지금 나는
걱정하는가,
고민하는가,
고뇌하는가...
이 세가지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하여 읽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왜 공부 하는지,
돈을 왜 벌고 싶은 건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저자 소개
1950년 일본에서 폐품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남.
그의 부모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로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던 그는 차별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함.
1972년 한국을 처음 찾았고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됨.
이후 일본 이름을 버리고 본명을 쓰기 시작함.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로 임명.
TV토론에서 보여주는 냉철한 분석과 지적인 분위기로 두터운 팬층을 형성.
현재는 도쿄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
본문 내용
1. 나는 누구인가?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국적과 민족, 고향과 국가를 둘러싼 분열과 갈등 때문에 사춘기때부터 떠도는 물음에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종교, 전통과 관습, 문화,지연과 혈연적 결합 등에 의해 굳게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학과 합리적 사고로 '우리'였던 사람들이 '나'라는 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분리된 자아가 자신을 확립하려고 하면 점점 비대해질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사회의 해체'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자아의 비대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됩니다.
저자는 자신의 자아를 힘겨워했을 뿐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아라는 것은 자존심이기도 하고, 에고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키고 싶고 부정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타인 또한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은 감추는 사람도 있고 완전히 자기 속에 파묻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한채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죠.
그렇다면 비대해지는 자아를 멈추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는 자기의 성을 높고 단단하게 쌓으면 자기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아라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아는 타자와의
'상호인정'에 의한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거죠.
시대는 이미 어중간함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이므로
어중간하게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자아를
세우거나 타자를 수용하는 일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진지하게' 자아 고민의 밑바닥을 향해 가다보면 타자와 마주할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을거라고 합니다.
2.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현대사회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돈 때문에 고민해 본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돈은 오래된 권위나 가치관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흥 부르주아가 이끌던 시대에 벼락부자가 되어
실질적으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시대를 밑바닥부터 만든 세대는 자신들 노력 덕분에 국가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만족스러운 감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제성장이 만들어진 세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열심히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돈에 대한 더러운 욕망이 원동력이 되어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근대 자본주의라는 것이 태어났을 때 거기에는 아름다운 이상이 있었습니다.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는 한 불평등과 불균형은 생기지 않을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불공정한 경쟁과 가혹한 부의 편중이 생겼습니다. 경제 발전이 벽에 부딪힌 나라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자본주의 시대의 시민적 경제관념은 없어지고 온통 오만과 영혼을 잃어버린 사고 뿐입니다.
돈은 '노동의 보상'과 같은 의미를 떠나 '돈'으로 독립하게 되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이해하기 힘든 속성이 있습니다. 돈만을 만들기 위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돈과 관계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의 인간성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기대어 놀고 먹는 사람은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것과 같고, 교활하게 남을 등쳐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이 돈은 원래 자리가 있으니 남의 것은 빼앗아도 괜찮다는 논리입니다.
아무리 기생적 머니 게임이 좋지 않다고 해도 주식, 펀드, 보험, 연금...이런 것들로부터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가능한 범위내의 돈을 벌고 소비하며 윤리에 대해 고민하며 자본의 논리 위를 걸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모든 가치가 변할 때 돈은 불변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경시하기 힘든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3.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가 홍수처럼 넘치는 세상에서는 검색만하면 대강의 정보를 순식간에 얻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식한 사람과 지성은 다르며, 알고 있다와 사고하다는 다르고 정보와 지성은 같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성은 학식과 교양 같은 요소에 더해 협조성과 도덕관까지 갖춘 종합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고도로 발전한 과학은 그 행위의 궁극적이고 본래적인 의미에 대해 알려주지 못합니다. 물리적인 거리나 국경도 없어지고, 24시간 쇼핑이 가능하며,시간의 개념을 없앱니다. 생명 유지 장치를 통해 인간의 죽음도 조절하게 된다면 죽음의 의미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과학 만능의 흐름속에서 미신이나 종교는 많이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세상의 구석에서 전통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계절에 따른 행사, 세시풍속, 사람이 주고 사는 것, 성장과 쇠퇴는 순환을 되풀이하는 자연의 섭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인간이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지 묻는 것과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의 지성이 무엇 때문에 있으며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3. 청춘은 아름다운가
대부분의 사람은 '젊음'에 최고의 가치를 둡니다.
그러나 비슷한 '청춘'이라는 말은 약간 가벼운 뉘앙스가 실려있습니다. 청춘은 단지 젊음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청춘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화하는 시기이며, 죽음과 맞닿아 있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아서 사람에 따라서는 쉽게 건널 수도 있지만
발아래 놓여 있는 죽음의 심연을 바라보게 되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타인과 얕고 무난한 관계를 맺고, 위험은 가능한 피하며, 모든 일에 구애되지 않으려고 하는 젊음은 탈색되어 있는 청춘입니다.
얼음 위를 지치듯 모든 일의 표면만 지친다면 풍성한 것은 얻을 수 없습니다. 청춘은 좌절과 실패가 있어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5.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믿는다는 것은 사물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는 근대적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현재의 종교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종교는 사람들의 인생과 일체화 된 것이었습니다. 개인이 믿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해있는 공동체가 믿는다는 개념이었습니다. 무엇을 믿던 자유가 되어버린 시대는 넓은 들판에 혼자 남겨진 듯한, 미아가 된 것 같은 막막함을 주기에 신앙이 살아 있던 시대가 훨씬 행복했다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유를 동경한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것에 속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개인의 시대입니다.믿음에 대한 결정권이 개인에게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그것을 선택한 자신을 믿는다는 것과 맞닿기에
일인 종교, 즉 자기가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의 지성을 믿고 계속 고민하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6.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합니다. 일의 보람이나 꿈의 실현을 느끼지 못하면 스스로 제구실을 못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나쓰몌 소세키의 <그 후>에 나오는 다이스케는 생활의 노동은 천한 것이고 신성한 노동은 빵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제목과는 달리 다이스케의 삶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경제적 곤란에 시달리는 현실적인 생활자가 되었을겁니다.
저자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의 배려,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합니다. 자기 존재를 타자에게 인정받고 확인받기 위해 역시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7.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지만 정작 진정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사랑이라고 떠올리는 것은 아름답고 신성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성취하고 결혼과 같은 형태로 구체화되면 사랑은 땅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왜 연인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행복해지고 싶어서라고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런 가벼운 선택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소모품같은 사랑이 될 우려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모습은 계속 변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에는 규칙도 없습니다. 상대가 던지는 물음에 대응하다가 대응할 의지가 사라지게 되면 사랑도 끝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부부는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세상을 떠나면 비탄에 잠기는 이유는 사랑이 모습을 바꾸면서 서로 속에 존재하고 그렇게 쌓인 것이 자기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인생이 끝나지 않으면 사랑의 성취를 알 길은 없습니다. 사랑의 모습은 변하며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 아닙니다.
8.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요즘들어 일어나는 무차별 살인은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느껴지게 합니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밝은 빛을 보면 모두 억압없이 자유롭게 사는 듯이 보이지만 빛에 가려진 어두운 부분에서는 스트레스나 자살 등과 같은 예외상황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죽음이 무의미해지면 삶 또한 무의미해집니다. 개인의 자유가 발전하며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자유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자유가 끝까지 진행되면 사람은 의지할 곳이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단순히 죽으면 안된다는 말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가 나를 인정하면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9.늙어서 '최강'이 되라
인생은 긴 듯해도 짧습니다. '노년'하면 육체의 쇠락과 사고력의 저하가 떠오르지만 요즘 시대에서는 의료 기술의 발달과 다양한 문화적 요소 덕분에 과거의 동일한 세대보다 훨씬 젊습니다. 아이는 줄고 노인은 늘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고령화사회에서는 죽음은 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두려움을 없애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뻔뻔하게 살며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도 더 크게 고민하고 뻔뻔해져서 새로운 파괴력을 가지고 밝은 미래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총평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날 것으로 마주하고 고민하는 힘으로 삶을 들여다 볼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안내자의 마음으로 지도를 건네 주는 듯 합니다.
이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고스란히 나의 몫입니다. 지도를 따라 각자의 길을 떠나야만 합니다. 거대한 미로같은 삶에서 모두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내 길을 찾는 것은 편안하고 너그럽게 나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인정하며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인문학 읽기 <논어> 홍익출판사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0) | 202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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